상생(相生)에 대한 일을 하다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상생이라고 하는 것이 서로가 주고받아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달라고 하는 것에만 집중되어서 언급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받는 것만이 상생이라고 생각해서 그러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당연히 잘되고 있거나 거래에 있어서 일방만이 이익을 얻고 다른 일방이 이익을 얻지 못한다면 어느 정도 이익을 얻었을 때의 일정 부분을 나누는 것이 경제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다른 일방으로 인해서 이익을 얻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만 이익을 얻고 상대방이 이익을 얻지 못하고 있을 때 종국적으로 그 상대방과의 거래가 이뤄지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이럴 때 다른 거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겠지만 나만 생각해서 나만 잘되고 있는데 과연 누가 나와 거래를 하는가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적정한 가격으로 거래가 이뤄지거나 그렇지 않았을 때에는 이익을 얻고 있는 일방이 이익을 얻지 못하는 일방에게 그것을 나누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생과 관련해서 일을 할 때를 보면 무조건 달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당연히 이익이 없어 어려움이 발생했을 때에는 일정한 이익을 요구하는 것이 맞다. 그것이 모두가 잘되기 위한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요구를 하는 일방이 상대방이 얼마나 이익이 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고 요구를 한다는 것이다. 아니 분명 상대방을 고려하여 합리적인 요구를 하는 경우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그리고 그런 요구를 하는 경우에는 적정한 요구 범위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그 한도가 없을 수 있고, 이익을 나눈다고 하여도 그에 대해서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익을 얻고 있는 일방이 상대방이 요구하는 것을 들어줬을 때 과연 그 상대방은 이익을 나눈 일방을 위해서 무엇을 줄 수 있는지도 생각해야 한다. 물건의 구매자와 판매자의 경우 판매자가 많은 이익을 얻었지만 구매자가 이익을 얻지 못하였을 때 당연히 판매자는 그 구매자가 유지되는 것이 필요할 것이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판매자가 이익을 얻고 있을 때 구매자가 판매자로부터 이익을 나눠 받았을 때 구매자는 판매자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도 생각해야 한다.
만약 판매자가 구매자를 위해서 이익을 나눴을 때 판매자는 미래의 투자를 늦추거나 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발생하여 판매자가 성장을 통해서 판매가격을 낮추거나 품질이 좋은 제품이나 상품을 구매자에게 공급할 수 없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구매자는 판매자가 이익을 나눴을 때 반대로 구매자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어야 할 것이다.
당연히 훌륭한 인물을 아낌없이 주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것이 아닌 것을 고려했을 때 서로 줄 수 있는 것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을 받는 것이 상생이라는 것을 반드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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